관객-작가가 함께 만드는 전시회: 일민미술관 ‘do it 2017, 서울’전

‘호상근재현소’는 성당의 고해소와 비슷한 모양새다. 호상근 작가는 매주 토요일 이곳에서 칸막이 너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관객이 털어놓는 비밀번호 뒷얘기다. 전화번호 뒷자리 같은 평범한 비밀번호도 있지만, 내밀한 사연이 얽힌 것들도 있다. 옛 애인의 이름 같은. 상처를 떠올리며 울음을 쏟는 사람, 추억을 담담히 고백하는 사람…. 작가는 사람들의 ‘비밀번호 고해성사’를 그림으로 그려 전시한다. 전시회가 끝나면 이 그림들은 고해성사를 한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서울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do it 2017, 서울’은 21세기 예술가의 역할을 묻는 전시회다. 이곳에서는 ‘예술가가 만들고 관객이 감상하는’ 관습에 반기를 든다. 예술가는 관객과 함께 작품을 만들고, 그렇게 나온 작품을 두고 서로 교감한다. 권두현 작가의 ‘For Rent’도 그렇다. 캔버스 여러 장에 제목의 알파벳을 한 글자씩 적어 넣었다. 관객들은 하루 2000원을 내고 캔버스 한 장을 빌려갈 수 있다. 이 캔버스를 이용해 연출한 장면을 사진 찍어 캔버스와 함께 반납하면 된다. 캔버스를 대여하는 동안 캔버스가 있던 자리에는 사진이 걸린다. 관객들의 사진과 작가의 남은 캔버스가 함께 전시되는 셈이다.

이 전시가 흥미로운 건 각각의 작품마다 ‘지시문(매뉴얼)’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호상근재현소’는 아르헨티나 조각가 아드리안 로야스의 ‘우리의 비밀번호들로 연애편지를 써 봅시다’라는 지시문을 따랐다. ‘For Rent’는 과테말라 아티스트 아니발 로페스의 지시문을 충실히 따랐지만, 관객들이 보내온 갖가지 사진 덕분에 작품은 다채롭다.

‘do it’ 전시는 1994년부터 영국, 호주, 핀란드 등 각국에서 진행된 것이다. 스위스의 큐레이터인 한스 오브리스트가 아이디어를 냈다. 세계의 예술가들이 지시문을 쓰고, 개최국의 예술가들이 이를 수행하는 것이다. 지시문이라는 골격은 유지하되 결과물은 다양하다. ‘열린 전시’라고 부를 만하다. 독일 행위예술그룹 ‘플럭서스’의 멤버였던 앨리슨 놀즈의 지시문은 ‘전시장 바닥을 자유로운 크기의 정사각형으로 나누고 그 공간에 빨간색 물건을 하나씩 놓으십시오.’ 미술관이 모은 일반인 공모단은 이 공간에 저마다의 빨간색 물건들을 가져다 놓았다. 빨간색 양말과 약통, 장난감…. 한눈에 봐도 개인적 추억이 깃든 물건들이다. 김동규 작가는 ‘당신보다 부유하고 매력적인 사람의 전기를 읽고 그 사람인 양 살아보세요’라는 일본 설치작가 사이먼 후지와라의 지시문에 따라 본인이 잘나가는 사람인 척 인터뷰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한국 작가의 지시문도 있다. 김범 작가는 ‘휴대폰 튀김을 만들려면 휴대폰에 달걀옷을 입히고 빵가루를 묻힌 후 기름에 튀기고 여분의 기름을 제거해 접시에 담아 맑은 간장과 함께 내면 됩니다’라는 지시문을 썼다. 이에 대해 구민자 작가는 17종의 휴대전화 기종, 100여 종류의 기름, 200여 브랜드의 달걀 등 온갖 재료를 동원해 ‘휴대폰 튀김’을 만드는 방법을 차트로 그려 제시했다. ‘물로 씻지 않는다/씻는다’ ‘튀기는 도중에 전화가 오지 않는다/전화가 온다’ 등 단계마다 경우의 수를 넣었음은 물론이다. ‘휴대폰 튀김’이라는, 예술가의 기괴한 ‘요리 지시문’에 대해 다른 예술가가 유쾌하게 화답한 대목이다.
동아일보 김지영 기자
May 2017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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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t, Minja 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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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튀김 처럼 보이는, 가장 맛있어 보이는 휴대폰 튀김을 만드는 경우의 수, 한국의 경우'
구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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